국민의힘, 윤 대통령 탄핵 및 체포 시도 앞서 딜레마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문제에 깊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도와 국회 탄핵소추단의 내란죄 철회 등과 관련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대통령 지키기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엄호에는 선을 그어 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강성 지지층과 조기 대선 모두를 의식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5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당 지도부와 중진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6일 오전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한다. 국민의힘은 국회 탄핵소추단이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건 위헌적 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입장이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탄핵심판에서 내란죄를 빼겠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며 "빨리 결론을 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고 재판을 할 수 없지 않겠느냐. 12·3 비상계엄 사태 후 내란수괴(우두머리)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윤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무산된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및 체포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탄핵소추문을 보면 대부분 내란죄와 관련한 부분인데, 이것을 빼고 심판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권영세 비대위원장도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기 탄핵에 대해 국민에 사과하고 탄핵소추안을 재의결하기 바란다"며 "국민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선동을 즉시 중단하길 바란다. 민주당이 불법적·위헌적 탄핵 속도전을 계속하면 국민의 엄중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 등 일부 의원들은 이날 오후 과천 공수처를 항의 방문했다. 국민의힘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청구 및 집행 과정도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 비대위원장은 “공수처는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영장 집행을 시도하고 있다”며 "또다시 무리한 집행 시도가 반복되면 사회 혼란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가세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장 탄핵 및 체포 반대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당내 일각엔 적극적으로 대통령을 엄호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민의힘 조배숙·이철규·강승규·구자근·박성민·이인선·김민전·임종득 의원 등은 전날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윤상현 의원은 공수처가 영장 집행을 하던 때인 지난 3일 관저에 들어가 '호위무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같은 날 열린 의원총회에선 일부 의원들이 "당 주도로 집회를 열어야 한다"며 장외 강경 투쟁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개로 당 소속 원외당협위원장들은 이르면 오는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민주당과 공수처를 규탄하는 장외집회를 개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당내에서 윤 대통령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양새가 형성되면서,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연석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집회 참여 자체가 대통령을 옹호하고 지키는 흐름으로 국민들이 보지 않겠느냐"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 당이 좀 잘못 판단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비판했다.
'친윤(친윤석열)당'이라는 비판이 커지자, 당 지도부는 윤 대통령 체포 및 탄핵심판 문제와 관련한 당의 입장이 윤 대통령 개인을 비호하거나 계엄을 옹호하는 차원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비판하는 것은 대통령 지키기가 아니다. 법질서, 법치주의, 대한민국 지키기"라고 강조했다.
의원들의 탄핵반대 집회 참석에 대해서도 '개인 소신'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신 수석대변인은 "당 지도부는 신중한 입장"이라며 "개인 판단에 따라서 하는 걸로 맡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지영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장외 집회와 관련해 "당 차원에서 아직 검토한 바 없다"며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강성 지지층과 조기 대선 모두를 의식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 들어서면서 강성 지지층이 빠른 속도로 결집하고 있는데, 윤 대통령과 관계를 단절한다면 강성 지지층의 반발은 물론 당 분열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지난 3~4일 100% 무선 ARS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40%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대에 진입한 건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공표 기준) 중 처음이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36%로, 민주당(39%)과 단 3%p차였다. 해당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하지만 보수층 결집만을 의식해 윤 대통령과 결별하지 않을 경우, 조기 대선 시나리오가 전개된다면 '계엄 동조 세력'이라는 야당의 공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극우 이미지를 벗어나고 외연 확장을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분간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당 지도부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 지지율도 오르고, 당 지지율도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결별을 선언한다면 당 지지율도 빠지지 않겠느냐. 그걸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전까지 여론을 예의주시할 듯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