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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보다 앞선 우리 민족 고유의 금동관, 나주 신촌리에서 발견
문화/연예

신라보다 앞선 우리 민족 고유의 금동관, 나주 신촌리에서 발견

이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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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역에는 국가지정 국보인 나주 신촌리 금동관이 전시되어 있다. 이 금동관은 높이 25.5㎝이며, 일제강점기인 1917~1918년 사이에 나주 반남면에 있는 신촌리 9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금동관은 마한·백제권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고고학계는 물론 전국민의 큰 관심을 받았다. 신라 고유의 양식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지만, 나주 금동관은 풀꽃모양을 하고 있어 신라 금동관(산 모양)보다 제작 시기를 앞서 추정할 수 있다.

 

학계는 나주 금동관을 4, 5세기경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백제보다는 연산강을 근거지로 하는 최고 권력자의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만 해도 백제는 호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촌리 고분은 영산강을 중심으로 백제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과 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마한의 최고 권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화려한 금동관은 우리 민족의 지표 유물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면류관 등 ‘관’ 모양의 왕관을 사용하는 반면, 한민족은 금으로 대표되는 금동관의 화려한 장식을 왕관으로 사용했다.

 

금동관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공통된 형태로 한반도와 만주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일본 등 알타이 민족 계통에서 고유하게 발견되는 유물이다.

이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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